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박상우 장관은 최근 "전세가격 하락과 맞물리면 고의적이든 비고의적인 사기든 발생할 수 있다. 없어져야 할 제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전세사기·깡통전세·역전세난이 불거지며 보증금 미반환 사태가 발생하며 전세 제도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진 영향이다./사진=뉴스1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박상우 장관은 최근 "전세가격 하락과 맞물리면 고의적이든 비고의적인 사기든 발생할 수 있다. 없어져야 할 제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전세사기·깡통전세·역전세난이 불거지며 보증금 미반환 사태가 발생하며 전세 제도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진 영향이다./사진=뉴스1

지난해 대규모 전세사기의 원인이 됐던 역전세가 다시금 증가하자 한국 사회에 뿌리 깊이 존재해온 전세 제도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기업이 운영하는 임대주택으로 전세를 대체할 생각이다.

14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박상우 장관은 최근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전세 폐지론을 언급했다. 그는 "(전세가) 가격 하락과 맞물리면 고의적이든 비고의적인 사기든 발생할 수 있다. 없어져야 할 제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매년 등장하는 '전세 폐지론'… 실현 가능성 있나

2022년 하반기 인천 미추홀구와 서울 강서구 화곡동 등을 중심으로 시작된 전세 사기 사건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며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하자 전세 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크게 떨어졌다.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 분석 결과 지난 4월 연립·다세대 주택 월세 비중은 52.98%로 전년 동기(48.18) 대비 약 4.8%포인트(p) 줄었다.


올들어 4월까지 전국 빌라 인허가 물량은 3463가구로 2022년(1만5951가구)과 2023년(6435가구)에 이어 2년 연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특히 광주와 울산의 경우 인허가를 받은 사업자가 한 명도 없었다. 1~4월 기준 지방 광역시에서 빌라 인허가 0가구를 기록한 건 2010년 이후 최초다.

정부가 전세사기를 막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전세 시세가 계약 당시보다 낮은 역전세 거래는 여전히 증가세다. 주택시장이 침체에 빠진 탓이다. 부동산 정보 플랫폼 '다방'이 2022년 1~5월 전세 거래(4만2546건)와 올해 1~5월 동일 주소지와 면적에서 거래가 발생한 9653건을 분석한 결과, 기존 전세보증금 대비 전세 시세가 하락한 경우는 46%(4437건)였다.

역전세 주택의 전세 시세 차액은 평균 4% 내린 979만원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 발생한 전세 거래 중 역전세 비중이 2022년 1~5월 34.7%를 차지했던 것과 비교하면 올해는 역전세 비중이 11.3%포인트 상승한 셈이다.


전세 폐지론은 박 장관이 처음 주장한 것은 아니다. 지난해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은 "전세제도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수명이 다한 게 아닌가 보고 있다"며 "전세사기나 역전세로 인한 고통은 현재도 진행 중이기 때문에 당장 응급처방하는 지원책을 펴되, 공격적으로 잘못된 판을 수리해야 할 것"이라며 한국 전세제도 자체가 가진 문제점을 꼬집은 바 있다.

그동안 전세는 일종의 사금융으로 이용되며 투자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전세 보증금과 매맷값의 간극을 활용한 이른바 '갭투자'를 통해서다. 예컨대 전세가율(주택 매매가격 대비 전세보증금 비율)이 80%에 달한다면 집값의 20%만으로 주택을 매입할 수 있다는 의미다. 주택 거래를 쉽게 만들고 시장에 막대한 자금을 유입시켜 집값을 자극하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전세제도 강제 폐지 어려워… 대체재 찾아야"

전문가들은 정부가 나서서 전세 제도를 폐지하거나 통제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표하고 있다. 빌라 등 비아파트의 경우 월세로의 완전한 전환이 아예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전세보증금이 상대적으로 높은 아파트는 월세 전환에 따른 세입자의 주거비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손은경 KB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전세는 주택가격이 상승한다는 기대감을 기반으로 지속되는 제도이기에 과거 주택가격이 하락하고
월세가 증가할 때마다 전세 무용론이나 소멸론이 등장했다"며 "집주인과 세입자의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탄생한 임대차 시장의 오래된 관
행으로 인위적으로 폐지하기는 어렵다"고 내다봤다.

국토부는 기업형 장기임대주택을 전세의 대안으로 고려하고 있다. 기업형 임대사업자가 100가구 이상의 주택(1개 필지)을 20년 이상 장기로 임대 운영하는 민간임대주택이다. 리츠(REITs, 부동산 자산신탁) 방식으로 운영될 전망이다. 대규모 재고 확보와 장기 안정적 임대주택 운영, 주거 서비스 품질 향상에 기여한다는 장점이 있다.

매달 임대료를 내는 월세의 형태다. 정부는 사업 시행자가 적정 임대료수익 확보할 수 있도록 5% 상한 외 임대료 증액 제한을 완화하고 임대기간 중 임차인 변경 시 시세반영을 허용해주기로 했다.

2015년 기업형 임대주택사업 육성을 통한 중산층 주거혁신을 위한 정책 브랜드로 '뉴스테이'(New Stay)가 도입됐다. 2년 후인 2017년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으로 전환됐다. 뉴스테이는 임대료가 비싼 데다 입주자격에 대한 제한이 없어 정책적 지원에 비해 공공성이 낮다는 비판이 제기된 탓이다. 이를 계기로 기업형 임대주택에 대한 지원이 축소되자 동시에 민간 임대차시장 발전도 느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기업형 임대인 육성은 한국 임대차시장 안정과 주택산업 선진화를 위해서 풀어야 할 과제"라며 "규제에서 지원으로 정책 방향을 전환하고 새로운 공공지원 민간임대 사업유형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전세 제도가 긍정적이지만은 않지만 임대차 시장의 주된 축으로 작용하는 만큼 현재의 불안 요인을 없애는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현태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세 제도는 임대인과 임차인의 이해관계 일치에 의해 유지돼 온 자생적 제도지만 주택 시장 사이클의 경기순응성을 완화하기 위한 정부 정책의 효과를 반감시킨다는 측면에서 부정적 외부효과를 초래한다"며 "전세 제도에 부여된 각종 인센티브를 줄여나감으로써 전세 제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 가는 동시에 서민 주거안정 측면에서 월세 비용 소득공제 확대, 임대주택 공급 확대 등 지원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