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5월1일 철도 역사상 가장 기이한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지난 18일 오전 9시25분쯤 경부선 서울역 승강장에서 발생한 열차 추돌 사고 현장. 기사 내용과 무관. /사진=뉴시스
2002년 5월1일 철도 역사상 가장 기이한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지난 18일 오전 9시25분쯤 경부선 서울역 승강장에서 발생한 열차 추돌 사고 현장. 기사 내용과 무관. /사진=뉴시스

2002년 5월1일. 대한민국 철도 역사상 가장 미스터리한 사고가 발생했다.

전남 여수시에서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열차 1대가 3번의 사고로 3명의 사망자를 낸 섬뜩한 사건이 일어나 국민을 충격에 빠트렸다. 같은날 3번의 사고, 3명의 기관사, 3명의 사망자. 이는 전 세계 철도 역사에서도 유래를 찾기 어려운 일이었다.


기관사 교체만 3번… 건널목만 지나면 사고 '철도 역사 미스터리'

열차 운행 중 건널목을 지나는 노인과 충돌하는 사고가 연이어 발생했다. 사진은 건널목을 지나는 열차의 모습. 기사 내용과 무관. /사진=한국철도공사
열차 운행 중 건널목을 지나는 노인과 충돌하는 사고가 연이어 발생했다. 사진은 건널목을 지나는 열차의 모습. 기사 내용과 무관. /사진=한국철도공사

2002년 5월1일 오전 10시20분 전라선 여수역에서 서울역으로 향하는 새마을호 162호 열차가 출발했다. 당초 열차는 오후 3시51분 서울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7408호 디젤 기관차가 이끄는 열차는 여수역을 떠난 지 30분도 채 되지 않은 오전 10시46분 운행을 중단했다. 전라선 율촌역을 지나던 열차가 여흥 건널목을 건너던 이모씨(여·80대)와 충돌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씨는 이 사고로 숨을 거뒀다.

이후 열차는 가까운 순천역에서 기관사를 교체한 뒤 열차 운행을 재개했다. 순천역에는 승무 교대를 위한 순천기관차승무사업소가 있다. 일반적으로 인명사고를 겪은 기관사는 보호 차원에서 차량 승무에서 제외돼 일정 기간 휴가를 받는다.


이때까지만 해도 안타깝지만 발생할 수 있는 불의의 열차 사고에 불과했다. 그러나 순천역에서 출발해 전라선 삼례역 인근을 달리던 열차는 오후 1시쯤 다시 한번 멈췄다. 열차가 익옥천 철교를 횡단하던 강모씨(여·80대)를 친 것이다. 강씨 역시 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연이은 건널목 사망 사고에 당시 열차에 탑승한 일부 승객은 겁에 질려 익산역에서 하차해 환불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열차는 황급히 사고를 수습한 뒤 익산역에 위치한 기관차승무사업소에서 다시 기관사를 교체했다. 세 번째 기관사는 찜찜함을 남긴 채 다시 서울역을 향해 열차 운행을 재개했다. 그리고 오후 1시40분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전라선에서 호남선으로 진입한 열차가 함일역 부근 건널목에서 또다시 사람을 친 것이다. 삼례역에서 발생한 두 번째 사고로부터 35분 만이었다. 당시 익산시 함열읍 용성 건널목을 건너던 구모씨(남·90대)는 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한 열차를 운행하면서 세 차례에 걸쳐 3명의 노인을 쳐 모두 사망한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사고 발생 당시 열차를 운행한 기관사는 세 명이었다.

방송3사 "귀신 씌었나"… 설명할 수 없는 사고, 그저 '불운'인가

3건의 사고 모두 기관사의 귀책이나 열차의 결함은 없었다. 사진은 코레일 직원이 시설유지보수 장비를 조작하기에 앞서 선로신호와 진행 조건을 확인하는 모습. 기사 내용과 무관. /사진=뉴시스(코레일 제공)
3건의 사고 모두 기관사의 귀책이나 열차의 결함은 없었다. 사진은 코레일 직원이 시설유지보수 장비를 조작하기에 앞서 선로신호와 진행 조건을 확인하는 모습. 기사 내용과 무관. /사진=뉴시스(코레일 제공)

해당 열차는 예정 도착시간보다 36분 지연돼 서울역에 도착했다. 도착과 동시에 세 차례나 연이은 사고를 겪은 승객들은 겁에 질려 황급히 열차에서 내렸다. 철도청(한국철도공사 전신) 관계자들은 열차가 서울역에 도착하자마자 고사를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불가사의한 사고 소식에 일부 방송사는 '귀신 씌었나?'라는 제목으로 해당 사건을 보도하기도 했다.

사고 경위를 조사한 철도청은 열차를 운행한 3명의 기관사 모두 귀책 사유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열차의 기계적 결함 역시 발견되지 않았다. 조사 결과 사고를 당한 세 노인은 열차 진입 경고음을 무시하거나 이미 내려온 건널목 차단기 틈으로 비집고 들어가는 등 위험한 상황을 스스로 자초한 것으로 밝혀졌다. 철도청은 사망자의 귀책으로 조사를 마쳤지만 불의의 사고를 위로하는 의미로 유족에게 장례비를 지급했다.

7408호 디젤 기관차는 사고 이후에도 계속 운행하다가 지난 2022년 퇴역했다. 지금까지도 3연속 건널목 열차 사고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불운'이 유일하다. 이 사고는 한국을 넘어 세계 철도 역사에도 '미스터리'로 기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