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2일 찾은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 모습. 1987년 준공된 이곳은 지어진 지 30년이 넘은 노원구의 대표 노후단지 중 한 곳이다. /사진=신유진 기자
지난 4월22일 찾은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 모습. 1987년 준공된 이곳은 지어진 지 30년이 넘은 노원구의 대표 노후단지 중 한 곳이다. /사진=신유진 기자


서울 노원구 상계동 상계주공5단지 재건축 사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 시범단지로 알려진 이곳은 시공사까지 선정하며 인근 재건축 단지 중 사업속도가 가장 빨랐다.

순탄하게 진행되는 듯했던 사업은 원자잿값 상승에 따른 공사비 인상과 분담금 폭탄, 공사 기간 등 문제로 암초에 부딪혔다. 이에 지난해 토지 등 소유주들은 시공사 GS건설에 계약해지 결정을 통보했고 정비사업위원회 내홍도 깊어지면서 위원장을 포함 위원들 전원 해임됐다.


다만 암울했던 지난해 분위기와 달리 올해 상계주공5단지 내부 분위기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최근 정비사업위원장을 새로 선출하고 분담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지난 4월22일 찾은 상계주공5단지는 서울에서 보기 드문 5층 아파트의 입구 양쪽으로 벽돌 문주가 서 있었다. 왼쪽에는 '상계5단지아파트' 문구가 오른쪽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전신인 '대한주택공사' 문구가 적혀있다.

글자 일부는 벗겨져 있어 아파트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오래된 세월을 가늠할 수 있었다. 아파트 외벽은 페인트칠이 다 벗겨져 있고 베란다 난간들은 녹이 슬어 갈색으로 변색됐다. 1층 아래쪽은 이끼가 군데군데 끼어 눈길을 끌었다.

840가구→996가구 탈바꿈… "156가구 공공임대 공급"

1987년 준공된 상계주공5단지는 노원구의 대표 노후단지 가운데 한 곳이다. 840가구 총 19동으로 최고 5층 단지로 건설됐다. 모든 가구가 37㎡(이하 전용면적)로 이뤄져 있다. 재건축시 용적률 300%를 적용해 최고 35층 5개동 996가구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상계주공5단지는 신탁방식으로 사업을 진행 중이다. 2021년 5월 재건축 사업 시행사로 한국자산신탁을 선정했고 2022년 11월 시공사 GS건설을 선정했다. 996가구 중 840가구는 분양물량, 156가구는 공공임대로 공급한다. 일반분양 물량이 없는 상태에 1대 1 재건축 방식으로 진행하면서 일반분양으로 얻는 수익금이 없는 상태다.

상계주공5단지 사업 속도에 금이 간 것은 지난해부터다. 정비사업위원회와 한국자산신탁은 재건축 예상 공사비 등을 근거로 분담금을 추산한 결과 소유주들이 84㎡ 아파트를 배정받으려면 가구당 5억원을 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해당 단지의 현재 시세(실거래가)는 5억~5억5000만원대다. 2021~2022년 부동산 호황기에 7억원까지 뛰었다.

상계주공5단지는 신탁방식으로 사업을 진행 중이다. 소유주들이 84㎡ 아파트를 배정받으려면 가구당 분담금이 5억원에 달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분담금 폭탄' 논란이 일었다. /사진=신유진 기자
상계주공5단지는 신탁방식으로 사업을 진행 중이다. 소유주들이 84㎡ 아파트를 배정받으려면 가구당 분담금이 5억원에 달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분담금 폭탄' 논란이 일었다. /사진=신유진 기자

건축 면적 대비 소유주 수 많아… "분담금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

현재 집값 수준만큼 분담금을 내야 재건축이 가능하다는 현실에 소유주들은 당황했다. 분담금이 늘어난 배경에는 모든 가구가 37㎡로 이뤄져 있고 재건축 면적 대비 소유주 수가 많아서 분담금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분석이다.

GS건설은 안전을 이유로 공사 기간 48개월을 제시했지만 위원회는 6개월 단축을 요청했다. 양측은 이견을 조율하지 못해 결국 시공사 계약이 해지됐다.

GS건설은 소유주들과 공사비 문제도 겪었다. GS건설은 지난해 1월 시공사로 선정된 당시 3.3㎡당 공사비 650만원을 제시했다. 이에 소유주들도 공사비를 낮춰달라고 요구했다. 지난해 서울 23개 정비구역 평균 공사비가 673만원인 것을 감안해 GS건설이 제시한 공사비는 낮은 수준이다. 다만 공사비가 나날이 상승하는 추세여서 소유주들도 공사비에 대해서는 더이상 문제 삼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비업계에 따르면 상계주공5단지는 실제 거주하는 소유주보다 투자자가 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자산신탁 관계자는 "투자자 7, 소유주 3 구조"라며 "이곳은 투자자가 더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상계주공5단지 소유주들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분담금을 지적했다. 이에 지난 4월13일 총회를 통해 공석인 정비사업위원장을 새로 선출했고 사업시행계획 인가 접수를 준비하고 있다.

서울시는 상계주공5단지와 같이 재건축 사업이 표류 중인 단지들의 사업성을 보전하기 위해 공공기여 부담을 낮추고 기부채납 인센티브도 상향하는 등 '재개발·재건축 2대 사업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아파트 외벽은 페인트칠이 다 벗겨져 있었고 베란다 난간들은 녹이 슬어 갈색으로 변색됐다. 아파트가 지어진지 오래됐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진=신유진 기자
아파트 외벽은 페인트칠이 다 벗겨져 있었고 베란다 난간들은 녹이 슬어 갈색으로 변색됐다. 아파트가 지어진지 오래됐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진=신유진 기자


시는 상계주공5단지와 같은 분담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업성 보정계수를 도입해 기부채납 없이 용적률 250%까지 달성할 수 있도록 했다. 1종→ 2종, 3종→ 준주거 상향 시 15% 부담해야 했던 공공기여를 10%로 낮춘다.

시의 이 같은 발표에 상계주공5단지 소유주들도 숨통이 트인 분위기다. 한국자산신탁 관계자는 "분담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순위"라며 "상황이 잘 되면 분담금을 4억원까지 줄일 수 있겠지만 현재로선 5억원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올해 분위기는 지난해보다 좋아진 상황으로 정비사업위원회도 새로 구성되고 앞으로 사업시행인가가 통과되면 사업이 정상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관계자는 "시공사 재선정은 내년 초로 예상한다"며 "해당 단지는 1대 1 재건축 방식에 일반분양도 없어 제자리에서 움직여야 한다. 30평대 설계는 힘들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현재 국내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암울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유례없는 공사비 폭등으로 사업이 멈춘 곳도 많다. 공사비 폭등의 원인인 고금리·고물가에 이어 주52시간제와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으로 공사 기간과 리스크 관리 비용이 늘고 있어 수익성 하락을 우려한 시공사들의 입찰 참여가 저조한 사태에 이르렀다.

건설현장에 만연한 타워크레인 기사 등의 불법 월례비 강요에 대해 정부가 단속을 시행하며 공사비용 증가가 딜레마에 놓였다. 주52시간제 시행으로 법적 근로시간을 준수할 경우 공사 기간이 늘어나고 반대로 불법 노동을 하게 되면 월례비 관행이 사라질 수 없는 구조인데 국토교통부는 건설현장 노동자의 초과근무비와 월례비 강요 등 행위에 대해 고용노동부, 경찰청 등과 5월31일까지 현장 단속을 진행한다.

공사비 증가는 기업의 부담이지만 비용 회피를 위해 분양가 등에 반영할 수밖에 없고 조합원과 분양 계약자의 피해가 예상된다.